지방공기업 정책변화의 검토 필요성
간단히, 지방공기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공기업이다. 공기업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과 공익을 추구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정책의 대상이다. 이윤이라는 기업성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공익이라는 공공성을 강조할 것인가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공기업 정책의 핵심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지방공기업도 국가공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정부의 공기업에 대한 정책의 변경이 이루어지면 지방공기업에 대한 정책도 거의 같은 방향으로 변경이 이루어진다.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그 이유를 들자면 지방공기업에 대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여전히 중앙정부인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방공기업의 설립에서부터 사업 영역, 운영, 평가 등 거의 모든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지방공기업법의 운영주체도 행정안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정부의 지방공기업에 대한 정책변화를 검토하는 것은 필요를 넘어 당위이다.
시장을 보는 두 개의 시각: 케인즈(Keynes) VS 하이예크(Heyek)
20세기 이후 경제학의 역사를 정부의 입장에서 좀 단순화시켜 보면 시장을 보는 두 개의 시각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케인즈(J.M.Keynes)가 주장한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예크(F.Hayek)가 주장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을 만들 뿐 시장의 자유가 경제를 구한다는 시각이다.
긴 시간 역사적 논쟁으로 유명한 케인즈와 하이예크의 대립은 결국 ‘정부와 시장의 대립’을 의미하며 이것을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논쟁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즉, 케인즈의 주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당연하게 여기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소위 진보적 입장이다. 반면 하이예크의 주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반대하며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고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는 소위 보수적 입장이다. 그래서 진보는 공공기관의 역할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수는 시장의 역할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대 양당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맥락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을 하면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을 선호하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인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시장’ 또는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보수적 정당이므로 상대적으로 ‘시장’과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공기업에 대한 입장과 정책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지방공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정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머지않아 국정과제의 후속조치로써 행정안전부가 지방공기업 관련 내용을 정책화하여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로선 명확한 내용 확인이 어려워 이미 제시된 내용만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먼저, 국정비전이 포함하는 분야별 내용 중 ‘역동적 혁신성장’에서는 ‘성장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해야 함’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시장과 민간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하이예크’류의 시장 중심의 경제를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된다. 이러한 기조는 국정목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국정목표 2’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로 설정하고 있어 예상의 합리성을 높이고 있다.
한편, 새 정부가 제시한 110대 국정과제 중 공공기관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지방공기업에 대한 입장과 정책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국정과제 15번은 “공공기관 혁신을 통해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 제공”으로써 지방공기업과 가장 관련이 높고 공식화된 정책이다. 이를 통해 확인 가능한 정책적 함의(Implication)를 도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제목표에서 보듯이 지방공기업 운영 방향은 공공성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지방공기업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력 효율화, 사업영역 조정, 민영화 등의 전략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적자 해소나 수익성 증대와 같은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는 정책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며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조직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관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민간의 혁신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공기업에도 통합 플랫폼이 구축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공기업의 운영과 관련하여 직무 중심의 조직·인사관리의 대전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상된다. 그리고 최근 급격히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지방출자·출연기관에 대한 범위의 조정(축소)도 예상된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과는 상당한 철학적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5
공공기관 혁신을 통해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 제공 (기재부)
과제목표
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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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효율화: 공공기관 스스로 인력 효율화, 출자회사 정리 등 추진시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자율혁신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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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업무를 상시·주기적으로 점검하여 재조정하고, 기관 신설을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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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건전성 확보: 재무위험이 높은 기관에 대한 집중관리제 도입 등을 통해 기관별 건전화 계획 수립 및 출자·출연·자금관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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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혁신·성장 지원: 공공기관 통합기술마켓 고도화, 공공기관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온·오프라인 해외협력 지원플랫폼 구축 등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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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책임·역량 강화: 공공기관 직무중심 보수·인사·조직관리 확산, 공공기관 자체 ESG역량 강화 및 민간 협력업체 ESG경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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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지정 및 유형기준 정비를 통한 공공기관 범위 합리화, 소규모 기관 등 경영평가 부담 완화, 인사·재무관리상 자율성 확대
기대효과
그림 1.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15번
새 정부의 기조 중에 하나로 눈여겨볼 수 있는 주제는 바로 ‘민영화’다. 지난 5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공식적으로 민영화 방침을 밝힌 적이 없고 해당 발언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서 유추해 보자면 지방공기업이든 국가공기업이든 공기업의 민영화 이슈는 여전히 살아있는 주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공공기관 효율화, 재무건전성, 업무 재조정, 기관 신설 최소화 등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공기업 혁신에 민영화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동시에 어떤 공기업도 민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그마(Dogma)’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민영화의 전략은 영국의 메이저 정부가 도입한 ‘시장성 테스트’를 들 수 있다. 5단계의 절차를 거쳐서 모두 공공 부문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할 경우에만 정부가 서비스 공급을 책임지는 것인데 구체적인 절차와 논리는 <그림 2>와 같다. ① 공공서비스의 제공이 유효하고, ② 정부가 책임져야 하고, ③ 정부가 수행하는 것이 맞으며, ④ 민간이 할 수 있다면 경쟁입찰을 통해서, ⑤ 정부가 수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정부가 담당하도록 하되 이 5가지의 조건을 단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민영화나 공공서비스 공급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 시장성 테스트의 기본 논리이다. 이러한 시장성 테스트를 통해 민영화가 성공적일 경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예산 절감, 예산 가치의 제고, 업무의 책임과 한계의 명확화, 평가기능 강화, 정부의 비효율 감소 등이다. 다만 지나친 경제논리로 인한 공공성의 약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부족 등은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을 기반으로 윤석열 정부의 지방공기업 관련 정책의 변화는 <표 1>과 같이 예상해볼 수 있다.
바람직한 정책 방향 및 지방공기업을 위한 제언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지방공기업에 대한 정책도 시간에 따라 변동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러한 정책변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설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의 지방공기업에 대한 정책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의 방향을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공기업이 노정하고 있는 경영의 비효율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지방공기업의 비효율을 모두 동일한 비효율로 볼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구분하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비효율을 ‘의도된 비효율(Intended Inefficiency)’과 ‘의도되지 않은 비효율(Unintended Inefficiency)’로 구분해야한다. 예를 들어 일부러 원가 이하로 요금을 받았기 때문에 발생된 적자 같은 ‘의도된 비효율’에 대해서는 면책해 주고,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발생한 적자 같은 ‘의도되지 않은 비효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거나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적 처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지방공기업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설립되는 만큼 지방공기업에 대한 정책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전략이어야 한다. 동일한 서비스가 어느 지역에서는 공공재가 되고, 어느 지역에서는 민간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목욕탕은 일반적으로 민간 부문이 담당하는 민간재이지만 농촌 작은 마을에서는 공공이 서비스를 공급할 수밖에 없는 공공재가 된다. 목욕탕 이외에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과 같이 특정 서비스는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민영화, 업무 재조정을 시도하더라도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의 반영은 필수적이다.
셋째, 지방공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특광역시, 도 같은 광역단위와 시·군·구의 기초단위에 따라 도시철도, 도시개발, 상·하수도, 시설관리, 환경, 기타 등 제공하는 공공서비스가 달라지며 같은 광역, 기초라고 할지라도 예산, 인력 등 규모 면에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또한 같은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보편적이고 일괄적으로 정책을 적용한다면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넷째, 지방공기업의 통폐합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물리적인 통합이 갖는 효율성의 ‘신화(Myth)’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질적 기관들을 통폐합하려는 시도는 여러 동물이 섞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키메라(Chimaera)’와 같은 괴물을 만들 우려가 있다. 과거의 실패한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사전 분석과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지방공기업들도 정책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며 구체적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공기업 스스로 제도, 운영, 구성원 등에 대한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제도개혁, 경영시스템 혁신, 교육강화 등을 통해 민간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조직보다 경쟁력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생존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지방화·지역화 시대에 맞춰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ESG 경영 중 거버넌스를 강조하고 싶다. 지역거버넌스의 강화는 ① 소통과 참여를 제도화하고 ②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통해 지방공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③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결국 지역거버넌스의 강화는 민영화나 구조조정의 방파제로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이다.
셋째, 4차 산업혁명 시대와 AI시대의 도래를 맞이하여 기술적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기술적 진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지방공기업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외부 자극을 인지하는 데 약 20분이나 걸렸던 브론토사우루스가 가장 먼저 멸종한 공룡이라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객관적이고 공신력이 있는 제도에서 지방공기업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국 단위에서 대외적으로 인정된 유일한 평가시스템은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제도이다. 그러므로 이 평가시스템에서 맨 뒤에 서 있는 지방공기업은 아마도 가장 먼저 존재의 필요성을 증명하도록 요구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