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과정에서 공장은 끊임없이 레일을 돌렸고, 노동자들은 언제나 쉬지 못하고 일했다. 45년 동안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부산의 한 공장에는 모두의 땀과 기계산업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폐산업지로 남겨진 공장은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시민들이 쉬어가는 쉼터부터 책이 가득한 도서관, 세련된 전시공간과 연주홀 그리고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볼거리가 가득하다. 365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자연과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공간, <F1963>을 찾았다.
글 이성주 사진 고인순
F1963의 입구
폐공장은 끊임없이 변신하는 중
영국 템즈강변에 있던 뱅크사이드발전소는 1981년 문을 닫는다. 폐쇄된 거대한 발전소는 새로운 전시공간으로 변화했다. 20세기 이후 현대미술품을 연대별·사조별로 전시하고 도서관과 카페·식당·기념품점·세미나실을 갖춘 테이트모던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예술 관광지이자, 오래된 공장과 발전소가 현대적인 예술공간으로 변신한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부산의 ‘F1963’ 역시 45년간 멈추지 않고 와이어를 생산하던 거대한 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경우다. 고려제강(Kiswire)이 설립한 F1963은 와이어 공장의 넓은 공장 부지와 각 공간을 쓰임에 따라 다채로운 변화를 거듭해왔다. 고려제강이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에 처음으로 수영공장을 지었던 1963년과 Factory의 ‘F’를 따서 F1963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F1963은 2008년까지 와이어를 생산한 공장이었지만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계기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6만m² 넓은 부지에 마련된 전시장에서 부산비엔날레가 열렸던 것을 시작으로 부산시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에 따라 특별한 장소가 된 것이다. 고려제강은 이곳에 서점과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시설과 자동차전시관(현대모터스튜디오)을 유치하고, 예술전문도서관과 음악홀(금난새뮤직센터)을 만들었으며, 넓은 부지 사이로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를 만들었다.
옛 공장터를 살린 F1963스퀘어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 재생공간의 멋
F1963은 부산시와 고려제강 기업, 부산문화재단이 협업해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의 첫 사례다.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 채 공간의 용도와 특성에 맞추어 리노베이션된 재생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옛 것을 활용했지만 옛 것에 머물지 않았다. 창의적으로 재해석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는 공간을 만들었다.
F1963은 기존 공장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하고 공간의 사용 용도에 맞추어 재생공간으로 태어났다. 옛 공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닥은 자연과 어우러져 조경석과 디딤돌이 되었고, 공장 지붕을 받치던 나무 트러스는 방문객들이 쉬어가는 벤치가 됐다. 넓은 공장부지를 활용한 F1963의 공간 콘셉트는 ‘네모 세 개’로 정의된다. 중앙의 첫 번째 네모인 F1963스퀘어는 세미나, 파티, 음악회 등을 하는 모임 공간으로 땅과 하늘과 사람들이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네모는 쉼의 공간으로 스페셜티 커피숍, 체코 비어 펍, 전통 막걸리를 테마로 한 파인 다이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네모는 전시장, 도서관, 서점 등 다양한 문화예술의 콘텐츠를 향유하는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옛 공장 구조를 활용한 카페 테라로사의 모습
카페 테라로사의 발전기와 와이어를 활용한 전시물
문화와 예술이 깃든 복합문화공간
F1963은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고, 문화예술의 모든 장르가 융복합되는 문화공장’이라는 목표대로 365일 내내 활기찬 모습으로 열려 있다. F1963에 자리한 현대자동차의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는 ‘Design to live by’라는 콘셉트로 평범한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디자인을 전시하고, 미래 모빌리티 패러다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동서양을 초월한 예술자료가 가득한 F1963 도서관은 거대한 미술 전시장과 같은 세련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예술공간을 즐기면서 F1963 내의 다양한 매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카페 테라로사 커피점에 들어서면 공장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가 이색적이다. 이곳에는 손몽주 작가의 와이어를 이용한 설치 작품을 시작으로 공장의 오래된 철판으로 되살린 커피바와 테이블, 당시 사용하던 발전기와 와이어를 감던 보빈을 볼 수 있다.
넓은 만큼 다양한 공간이 가득하다. 옛 공장을 트렌디하게 리모델링한 맥주 브루어리 매장 Praha993, 꽃과 가드닝 클래스 등의 식물을 주제로 한 스튜디오 화수목 flower & garden, 발효를 테마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복순도가, 많은 책과 중고 도서를 판매하는 예스24 등이 있다.
스튜디오 화수목 flower & garden의 외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산업 유산
대한민국의 산업을 이끌어온 유산은 이제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어려운 시절 멈추지 않는 레일과 먼지 사이에서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노력이 이곳에 녹아 있다. 지역사회 환원이라는 뜻을 담아 아이들이 뛰어놀고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변신한 데에는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다. F1963을 사랑받는 이유는 이곳에 묻어 있는 시민들의 추억과 산업 유산이 쌓아온 세월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부산시민들에게 이곳은 이미 ‘힐링 낙원’이자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또한, F1963의 넓은 부지를 변형한 야외 달빛가든과 소리길도 있다. 산책하기 좋은 친환경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조용히 쉬어가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옛 공장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휴식이 있는 F1963에서 행복한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어느 날 어둠 속에 버려졌던 공장에 불이 들어온 순간, 누구나 쉬어가고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공간이 탄생했다. 365일, 모두가 과거를 공감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F196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