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블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낯선 친숙함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낯선 친숙함’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친숙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집처럼 편안하게 친숙한 것과 낯설고 불편하게 친숙한(uncanny) 것이다. 낯선 친숙함은 마치 관계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거북한 느낌을 준다.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블루가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부분은 낯선 친숙함과 관계가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블루(우울감)'가 합쳐진 신조어로서, 신종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우울은 기쁨을 경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관계가 있다.
『버킷리스트』라는 영화에는 멋진 이집트 신화가 등장한다. 사람이 죽어서 천국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신은 그 사람의 삶을 심판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이다.
코로나 블루가 삶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는 포스트 코로나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기쁨(joy)을 발견하고 이러한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쾌감이나 만족감보다는 기쁨이 상대적으로 더 성숙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쾌감이나 만족감은 고통을 배척하는 반면, 기쁨은 고통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을 줄 모르는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다.
행복의 본질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에 있다. 바로 그렇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행복한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쾌락의 강도’나 ‘만족감의 빈도’가 아니라, ‘기쁨을 경험하는 깊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블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낯선 친숙함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낯선 친숙함’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친숙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집처럼 편안하게 친숙한 것과 낯설고 불편하게 친숙한(uncanny) 것이다. 낯선 친숙함은 마치 관계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거북한 느낌을 준다.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블루가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부분은 낯선 친숙함과 관계가 있다.
코로나 블루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혜롭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 때 그 답을 찾는 좋은 방법중 하나는 최근 한 달 간의 통화목록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때 통화 목록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용건이 있어서 통화를 한 사람과 특별히 용건이 없는데도 통화를 한 사람을 구분해 보라. 당연히 용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통화를 했던 사람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단순히 전화통화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업무용 전화를 많이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전화통화를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휴대폰이나 전화기를 통해 행복해지는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음성 정보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더라도 그 사람과 웃으면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소화제를 준비하기만 한다면, 바로 그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 하기 어려운 활동이 있다. 바로 용건이 없을 때, 그 사람과 전화통화를 주고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음성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가장 잘 전달해주는 표현 매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 가장 빠르게 변하는 것이 전화 통화 시간과 빈도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주고받는 전화통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용건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용건이 없을 때도 통화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두 사람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행동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용건이 없을 때 두 사람이 서로 전화를 주고받는 시간과 빈도다. 물론 이때 정말로 두 사람의 관계가 좋다면, 둘 중 어느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걸게 될 것이다.
전화의 기술을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배우 차승원이다. 차승원의 전화사랑은 연예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차승원이 각종 인터뷰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그는 친한 사람과 적어도 1주일에 3회는 전화통화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그가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 전화통화를 자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그는 전화통화에서 그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거나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등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행복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전화의 기술을 소개하고 나면, 가끔 청중들 중에는 강연의 취지와는 사뭇 다른 결론을 내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결론내리는 것이다. “전화통화를 많이 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전화를 열심히 돌려야겠다.”
하지만, 전화의 기술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저 전화통화를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지혜로운 형태의 전화통화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행복을 추구하는 데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 처럼, 싫어하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 하기 어려운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특별한 용건이 없을 때, 그 싫어하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싫어하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주고 받는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인지를.
누구든지 싫어하는 사람과 억지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더구나 두 사람이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본 제 3자가 친한 사이로 오해할 수 있게끔 꾸미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관계에 따라서는 이처럼 주기적으로 전화통화를 하던 것이 얼마 못가기도 하고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억지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맞다면, 결국에 가서는 모두 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관계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행복에 도움이 되는 전화 통화는 진정으로 내가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있는 친밀한 사람과의 통화’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과 ‘용건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모두 통화하는 사람.’ 물론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바로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