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국가공기업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특성으로 대다수 공기업들이 우리나라의 지방공기업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례로 도시나 물관리를 담당하는 싱가포르의 대표적 공기업인 주룽타운공사(JTC: Jurong Town Corporation), 공공시설원(PUB: Public Utilities Board) 등이 경기도시공사나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한 사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가 도시개발, 상하수도, 지하철 등 공공서비스의 해외진출을 촉진하기 설립한 싱가포르협력공사(SCE: Singapore Cooperation Enterprise)도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의 집중적 벤치마킹 대상이다. 일례로 서울특별시는 싱가포르와 유사한 공공서비스 해외진출 전담기구를 서비스 분야별로 설립해 도시개발, 도시철도, 상하수도, 지능형 교통망 등의 해외진출을 촉진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고는 싱가포르 공기업의 전반적 작동원리를 소개하는 한편 주룽타운공사와 공공시설원으로 대표되는 싱가포르 공기업들의 도시관리 성과와 팬데믹 대응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싱가포르 공기업의 작동원리와 우수사례
싱가포르의 역동적 거버넌스
출처 : Neo & Chen(2007: 13)
실적주의와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영국식 공공관리를 계승한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이후 지난 55년 동안 다양한 우수행정사례를 창출해 왔다. 특히 싱가포르의 재도약을 선도한 명품행정의 신화는 21세기의 개막을 전후해 촉진되었다. 싱가포르 발전국가의 창시자인 리콴유 체제에 대한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정부와 공기업은 경제사회 전반의 재도약 과정에서 특급 도우미의 역할을 수행했다. 유능한 인재와 신속한 절차 및 강력한 문화는 명품행정의 필요조건이다. 더불어 충분조건은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일하는 방식으로 기관의 사명에 부응하기 위해 미리 생각하기, 다시 생각하기, 두루 생각하기를 구현하였다(Neo & Chen, 2007: 12). 즉, 명품행정의 충분조건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미리 생각하는 것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실행되도록 다시 생각하는 것이며, 해외 우수사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두루 생각하기이다.
일반적으로 정부나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역동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한 존재로 간주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민간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수제공, 경제성장률과 연계한 성과급 지급, 시험보다는 전문성을 중시하는 특채제도, 민간부문과의 활발한 인사교류, 부정부패에 대한 무관용 정책, 중앙공무원교육원을 활용한 사례교육 등에 주력하였다.
주룽타운공사와 공공시설원의 도시관리 성과
싱가포르의 외자 유치는 정부 부처와 더불어 주룽타운공사나 도시재개발청(URA: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이 선도하였다. 바이오와 복합리조트로 대표되는 미래 유망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투자유치 단계마다 헌신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투자유치가 성사된 이후에도 기업활동에 대한 애로청취와 정보제공을 위해 다국적기업의 본사와 지사를 자주 방문하였다.
바이오메디컬 분야는 클러스터화 구상이 결부된 차세대 첨단기술산업의 전형적 사례에 해당한다. 이에 싱가포르는 서울의 용산처럼 도심에 바이오폴리스를 조성하는 한편 늪지를 개발한 주룽섬 일대에는 항만배후부지, 일반항공센터, 의료기술센터 등을 조성하였다. 나아가 첨단기술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 경험을 중국 쑤저우에 수출할 정도로 창의적이다. 더불어 싱가포르는 2006년 도시재개발청 주도로 마리나 베이(Marina Bay)와 센토사(Sentosa) 섬에 복합리조트를 유치해 서비스산업의 활성화를 유도하였다(김정렬, 2019).
한편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이후 말레이시아에 원수를 의존하는 ‘불안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수자원 공급원의 다변화를 추구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빗물 집수, 중수도 활용, 해수담수화 등과 같은 특정한 정책이 아니라 선도조직인 공공시설청(PUB)이 수자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총체적 방식’과 ‘변혁적 리더십’이다.
싱가포르는 수자원을 보존하고 절약하는데 기여하는 누진적 요금체계는 물론 다층적 집수방식, 하수와 우수를 결합한 중수도, 정보통신 기반의 통합관리체계, 안전한 신생수(NEWater)를 앞세운 국민인식의 제고, 클러스터를 활용한 연구개발투자의 활성화, 효과적 법제와 신중한 규제, 유능하고 대응적인 관리인력 등에서 모범적이다. 하지만 초창기 공공시설원은 효율성과 완결성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1995년 당초 공공시설원이 상수도와 더불어 담당하던 전기와 가스를 민영화하는 대신에 2001년 하수도와 저수지 업무를 환경부에서 이관받는 방식으로 규모와 범위 및 밀도의 경제를 구현하였다. 또한 공공시설원의 혁신을 주도할 리더로 쿠텡체를 임명하였다. 국부펀드인 테마섹과 항만청장 재직시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PUB가 기존에 축적한 기술 역량에 부가해 관리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싱가포르 공기업들의 팬데믹 대응전략
미래의 공기업은 예측과 지능을 토대로 민첩성(Agility)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구현해야 한다.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가 코로나19로 촉발된 팬데믹의 대응기제인 에코스마트시티이다.
기후변화에 부응하고 인공지능이 촉진하는 에코스마트시티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행동을 전부 데이터화해서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하고 도시인들의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도시다. 그리고 에코스마트시티 거버넌스란 퇴조한 산업기반과 주거지대를 정보기술과 자연환경을 활용해 재생하기 위해 정부-기업-시민이 협력체제를 구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도시혁신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정책과정 전반의 갈등관리가 필수적이다(정재승, 2020; 김정렬, 2020).
에코스마트시티를 표방한 싱가포르는 관련 공기업들의 협력체제를 활용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이다. 특히 안전과 환경을 비롯해 공기업이 담당하는 도시관리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례로 정원 속에 도시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도록 싱가포르의 모든 공원을 연결하는 공원 커넥터 구상을 추진해 왔다. 또한 관광객과 투자자의 편의 제고를 위해 지능형 교통망을 활용해 도심혼잡 문제를 해결하였다. 일례로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억제하는 통행료 자동부과시스템의 도입과 지하철 노선의 지속적인 확충이 대표적 사례이다.
싱가포르 도시개발의 주도자인 주룽타운공사도 최근 들어 지속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개발자로서 JTC는 산업공간 및 혁신지구의 계획, 설계, 건설 및 관리에서 환경적 영향요인을 중시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가 태양광 지붕과 해양 인공암초 사업의 추진이다. 태양광 패널은 신재생에너지를 촉진하는 핵심적 수단으로 부상했고, 해안개발의 가속화는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룽타운공사는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 테스트베드와 자율주행차 실증환경을 구축해 운영하는 등 싱가포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특·광역시 도시개발공사를 비롯해 우리 지방공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통합 물관리 역량을 인정받은 싱가포르 공공시설원은 서울시의 상하수도 지방공기업이나 하천관리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싱가포르가 2018년 서울시를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자로 결정한 일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광역상수도를 담당하는 한국수자원공사와의 협업을 통해서는 자동화된 수질모니터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상태양광 도입, 중수도 기술과 운영성과 등을 공유하고 있다.